나라배움터 청렴강의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이야기 시험 정답 답안입니다. 최대한 인물별로 지문을 구별해 놓았습니다. 여기 있는 지문으로만 80 점 이상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양이 많아서 페이지 몇 개로 나눠놨으니 해당 페이지에 없으시면 링크 클릭하셔서 다음 페이지 넘어가셔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검색은 컨트롤+F 하시면 됩니다.
이시백
-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영의정까지 이르렀다.
- 그의 집은 청빈한 선비의 집 같았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바른 성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 이시백의 태도는 바람직한 공직생활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인조반정으로 공을 세워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수어사로 활약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 바른 성정을 지닌 사람으로 볼 수는 없다.(x)
- 사신으로 가는 여정 중 기생을 동반한 접대를 물리쳤다.
- 임금의 명령에도 옳다고 생각한 바는 절대 굽히는 바가 없어 매몰차게 심부름꾼을 돌려보낸 이시백의 태도는 바람직한 공직생활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 이괄의 난을 격파한 공으로 수원방어사가 되어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 관료로서 뛰어난 능력을 증명했지만 그는 관직의 높낮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바른 성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 아버지와 함께 일찍이 공을 세웠고,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한 이시백은 체격이 크고, 힘이 세었으며, 억울하게 곤욕을 당하면 노련하게 싸울 줄도 알았다.(x)
- 이시백은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하였다. (x)
- 사신들에게 베푸는 잔치를 본 이시백은 기생을 물리치고, 평양서윤을 꾸짖었다.
- 높은 관직에 올라서도 ‘청빈한 선비의 집 같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 이시백이 살던 시절엔 조선에는 사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는 관례가 있었다.
- 이시백은 아버지와 함께 역적으로 몰려 관직을 반납해야 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x)
이주국
- 그는 용모가 건장하고 뛰어났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 있고 부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아서 명망이 있었으나 그로 인해 반목할 때가 많아 여러 번 문신들로부터 횡포를 당하기도 하였다.
- 이주국은 죽은 병사의 아내와 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서 사랑하고 돌보기를 친자식과 같이 하여 먹고 입히는 것을 후하게 하고 아이가 자란 후에는 아내를 얻어주어 항상 곁에 머물게 하고 보살펴 주었다.
- 이주국이 죽은 병사의 아내와 아들을 집으로 들여 보살핀 일화를 통해 그의 강직한 성품과 책임감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 훈련대장을 사직하면서도 이주국은 군제삼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였으며,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 숨진 병사를 위해 그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 정조는 이주국의 활 쏘는 모습을 보고 ‘오백’이라는 당호를 하사하였다.
- 훈련대장을 사직하면서도 이주국은 ‘군제삼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 건장한 용모와 강직한 성품은 문신들마저 그를 따르도록 만들었다.(x)
-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다 숨진 병사를 위해 그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주국은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다 숨진 병사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고 처벌하였다.(X)
이약동
- 송덕비, 치사, 금갑옷
- 효진: 부정부패를 바로 잡은 이약동은 오로지 백성들의 윤택한 삶은 위해서 한 행동이야
- 남구: 그래서 백성들은 깊이 감동하여 이약동에게 송덕비를 세워 보답하려 했어~ 근데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 대체 이유가 뭘까?
- 윤정: 이약동은 백성들의 갸륵한 마음을 헤어릴줄 알고, 또 청렴결백한 인물로 유명하다고!
- 대성: 부정부패를 바로잡은 이약동은 오로지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 한 행동이야!
- 승리: 그래서 백성들은 깊이 감동하여 이약동에게 송덕비를 세워 보답하려 했어~ 근데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 대체 이유가 뭘까?
- 탑: 이약동은 원래 돈이 될만한 거창한 선물은 싫어해. 백성들의 판단미 스였던 거지 뭐~ (x)
- 영배: 아냐 이약동은 백성들의 갸륵한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또 청렴결백한 인물로 유명하다고!
- 지용: 맞아. 그래서 백성들이 다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직접 만들어 선물한 말채찍은 고맙게 받고 소중히 다뤘어! (x)
- 공직자로서 사사로운 금품을 멀리하려고 하였다.
- 관직에서 받은 말채찍을 개인적으로 보관하였다. (x)
- 성종 때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 견금여토를 가훈으로 하였다.
- 이약동은 백성들을 아끼기로 유명했고, 제주도의 한라산신제단은 이를 잘 보여주는 유산으로 남아있다.
- 이약동과 이시백의 모습에서 금품 및 향응을 대하는 공직자의 바람직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 오늘날 정년퇴임과 같은 ‘치사’를 하기까지 흐트러짐 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 제주목사로 부임하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그를 많은 이들이 존경했다.
-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말채찍은 집안의 가보로 고 이 모셔두었다.(x)
- 제주목사 임기를 마치고 백성들이 선물한 금갑옷은 바다로 던져버렸다.
정약용
- 과학 기술을 실생활에 응용해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자 했다.
- 유배 생활 중에도 사소한 부탁 하나 청하기를 거절한 정약용의 태도는 다른 공무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해쳐서는 안 될 공무원들의 귀감이 된다.
- 정팔:자고로 공무원이라면 정약용처럼 오랜 기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인사청탁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해!
- 동룡: 맞아, 또 정약용처럼 오랜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검소하고 신중한 언행으로 자기 관리를 해야 하지! (x)
- 택이: 난 두 사람의 태도에서 공직자들은 청탁과 이권개입 등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바람직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
- 선우: 유의의『목민심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 (x)
- 보라: 나도 유의가 유배생활동안 그런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저술한 『맹자요의』, 『흠흠신서』,『경세유표』를 보고 배운 바가 많아! (x)
- 정약용은 강직한 성품 탓에 유배지를 전전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 오랜 유배생활로 고통받던 정약용은 아들의 조언에 따라 이기경대감과 강준흠대감에게 용서를 구하게 됐다.(x)
- 잘못된 관행이 이어지던 무과시험을 바로잡기 위해 사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유배지에서도 학술활동에 매진해『맹자요의』, 『흠흠신서』, 『경세유표』등을 저술했다.
- 정약용은 청렴한 태도로 백성들을 널리 살펴 정조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았다.
- 16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인사청탁에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 올곧은 성품을 주변과의 잦은 마찰을 불러왔고, 주변의 공격을 받곤 했다.
- 유배지에서도 학술활동에 매진해 맹자요의,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을 저술했다.
- 배다리설계, 거중기설계 등 과학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백성들을 위한 의료기기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x)
- 노론의 세력 탓에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무과시험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은 정약용의 일화는, 인사 문제를 다루는 공직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척도가 되고 있다.
- 정약용은 홍주의 목사로 있으면서 고관대작이 사사로이 보낸 편지는 한 번도 뜯지 않았다.
최부와 송흠
- 송흠은 삼마태수라는 별호를 얻으며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 송흠은 최부에게 사행길에 말을 탄 것을 지적한 것은 공용물의 사적사용에 해당한다.
- 최부는 송흠이 역마를 타고 서울에서 집까지 내려온 것도 용도 외 사용으로 보았다.
- 최부는 친 아우 같은 송흠이 사행심에 빠져 공직자의 정신에 어긋나게 될까 염려되어 그를 차단하였다.
- 최부와 송흠은 삼마태수로 불릴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았으며, 청백리의 표본이다.(x)
- 최부와 송흠의 일화에서 공무원이 지녀야 할 예산과 공용물의 올바른 사용의 청렴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최부는 역마를 타고 자신을 찾아온 송흠을 꾸짖으며 공용물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였다.
- 최부와 송흠은 고향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이다.
- 송흠은 최부를 만나기 위해 나라에서 받은 역마를 사용했다가 최부에게 질책을 받았다.
- 송흠이 최부를 만나기 위해 최부의 집까지 역마를 사용한 것은 예산과 공용물을 사용할 공직자의 모범적인 사례이다.(x)
- 송흠은 인종 때 청백리에 녹선 된다.
- 최부는 1454년 출신으로, 연산군 때 사람이다.
- 조선 중기 상령을 대표했던 유학자 김종직의 학통을 추종하는 문인이다.
- 최부는 1504년 갑자사회 때 참형을 당하였다.
- 송흠과는 절친한 사이였지만, 개인적인 사행에 역마를 타고 온 모습을 보곤 실망하여 그 뒤로는 다신 만나지 않았다.(x)
이덕형
- 오성과 한음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x)
- 임진왜란 당시 움직이려 하지 않던 명군을 파견하도록 설득하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 영의정 자리까지 올라 혼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 사랑하는 첩을 버린 일화에서 개인의 사사로움을 뒤로한 채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공직자의 충절을 엿볼 수 있다.
- 훗날에 재상이 된 이항복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 이덕형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정주(定州)까지 왕을 호위하였고, 명군의 파견을 성공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 이덕형은 제호탕을 바친 첩의 의도를 의심하여 그녀를 내쳤다.(x)
- 이덕형은 많은 공적을 이뤘으나, 광해군 즉위 이후 모함당해 관직을 삭탈당했다.
-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x)
- 첩의 총명한 모습에 괴로워하던 이덕형은 첩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 첩을 버린 그의 행동에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공직자의 충절이 돋보인다.
- 그의 일화에서 「공무원 윤리헌장」의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생각할 수 있다.
김시양
- 어려서부터 총명함으로 두각을 나타낸 김시양은 160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문원정자로 벼슬길에 올렸다.
- 전라도도사조선시대각도에 실시하던 시험인양 시에 출제한 시제가 와의 실정을 비유했다 하여 유배지를 가야만 했고, 그곳에서 사직하였다.(x)
- 괴산 김시양 신도비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가 비문을 썼고, 웅장한 규모와 질 좋은 돌이 사용된 것으로 봤을 때 김시양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다.
- 어릴 적부터 총명함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청명한 성품을 간직했던 김시양은 1636년 청백리에 이름을 올렸다.
- 김시양은 160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무원 정자로 벼슬길에 올랐다.
- 김시양은 귀양을 가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재조명받아 다시 중용되기도 하였다.
- 김연원이 경복궁 재건축을 담당하던 시절, 조선전체는 온백성이 생활고를 겪는 등 힘든 시기였다.(x)
- 김시양과 심연원의 태도로부터 특혜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해관계에 얽매지 않는 공무원의 올바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 하하: 공무를 집행할 때에는 사위의 요청에도 치우치지 않았던 김시양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강직했고, 대단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 수 있어.
- 홍철: 사위의 간청에도 냉정했던 것을 보아하니 평소 김시양과 사위는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아. (x)
- 길: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경복궁을 복원한 관리인을 크게 꾸짖은 것은 두 번째 화재로 인해 조정의 위세가 많이 무너졌는데 꾸미는 것에 시간낭비를 했기 때문이야. (x)
- 형돈: 아냐, 국법 상 오직 내전의 침실에만 비단을 사용하는 것인데, 하물며 관청건물에 비단을 쓴 것은 공직자로서 너무 사치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야.
-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김시양은 기억력도 뛰어나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한다.
- 전라도도사 시절 향시에서 출제한 시제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 왕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다. (x)
- 사돈 지간마저 국무의 절차를 엄중히 밟은 그의 태도에서 공무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일처리를 배울 수 있다.
- 후금과의 화친을 주장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이순신
- 이순신은 노량해전 전투에서 도주하던 적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호남지역으로 들어오는 피난민들을 돌보고, 전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둔전을 일구고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 이순신은 직속상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뜰안의 오동나무를 베고, 심부름꾼을 극진히 대접하여 돌려보냈다.(x)
- 원칙을 엄수하는 강직한 행동으로 이순신은 유배 생활을 하는 등 험난한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 임진왜란 때 수군을 담당했던 이순신은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북상하던 왜군들을 저지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 이순신을 대표하는 또 다른 면모는 원칙을 엄수하는 강직한 행동으로 유베 생활을 하는 등 험난한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 이순신의 직속상관 성박과의 일화 중 “나라의 재산이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공직자의 강직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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