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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나라배움터 역사속에서 찾은 청렴이야기 정답 답안(2)

by †º†ª㉿ 2023. 2. 23.

나라배움터 청렴강의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이야기 시험 정답 답안입니다. 최대한 인물별로 지문을 구별해 놓았습니다. 여기 있는 지문으로만 80 점 이상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양이 많아서 페이지 몇 개로 나눠놨으니 해당 페이지에 없으시면 링크 클릭하셔서 다음 페이지 넘어가셔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검색은 컨트롤+F 하시면 됩니다.
 
 

이시백

  •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영의정까지 이르렀다.
  • 그의 집은 청빈한 선비의 집 같았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바른 성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 이시백의 태도는 바람직한 공직생활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인조반정으로 공을 세워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수어사로 활약하는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 바른 성정을 지닌 사람으로 볼 수는 없다.(x)
  • 사신으로 가는 여정 중 기생을 동반한 접대를 물리쳤다.
  • 임금의 명령에도 옳다고 생각한 바는 절대 굽히는 바가 없어 매몰차게 심부름꾼을 돌려보낸 이시백의 태도는 바람직한 공직생활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 이괄의 난을 격파한 공으로 수원방어사가 되어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 관료로서 뛰어난 능력을 증명했지만 그는 관직의 높낮이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바른 성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 아버지와 함께 일찍이 공을 세웠고,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한 이시백은 체격이 크고, 힘이 세었으며, 억울하게 곤욕을 당하면 노련하게 싸울 줄도 알았다.(x)
  • 이시백은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하였다. (x)
  • 사신들에게 베푸는 잔치를 본 이시백은 기생을 물리치고, 평양서윤을 꾸짖었다.
  • 높은 관직에 올라서도 ‘청빈한 선비의 집 같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 이시백이 살던 시절엔 조선에는 사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는 관례가 있었다.
  • 이시백은 아버지와 함께 역적으로 몰려 관직을 반납해야 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x)

 

 

 

 

 

이주국

  • 그는 용모가 건장하고 뛰어났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 있고 부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아서 명망이 있었으나 그로 인해 반목할 때가 많아 여러 번 문신들로부터 횡포를 당하기도 하였다.
  • 이주국은 죽은 병사의 아내와 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서 사랑하고 돌보기를 친자식과 같이 하여 먹고 입히는 것을 후하게 하고 아이가 자란 후에는 아내를 얻어주어 항상 곁에 머물게 하고 보살펴 주었다.
  • 이주국이 죽은 병사의 아내와 아들을 집으로 들여 보살핀 일화를 통해 그의 강직한 성품과 책임감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 훈련대장을 사직하면서도 이주국은 군제삼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였으며,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 숨진 병사를 위해 그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 정조는 이주국의 활 쏘는 모습을 보고 ‘오백’이라는 당호를 하사하였다.
  • 훈련대장을 사직하면서도 이주국은 ‘군제삼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 건장한 용모와 강직한 성품은 문신들마저 그를 따르도록 만들었다.(x)
  •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다 숨진 병사를 위해 그의 가족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주국은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다 숨진 병사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고 처벌하였다.(X)

 

 

이약동

  • 송덕비, 치사, 금갑옷
  • 효진: 부정부패를 바로 잡은 이약동은 오로지 백성들의 윤택한 삶은 위해서 한 행동이야
  • 남구: 그래서 백성들은 깊이 감동하여 이약동에게 송덕비를 세워 보답하려 했어~ 근데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 대체 이유가 뭘까?
  • 윤정: 이약동은 백성들의 갸륵한 마음을 헤어릴줄 알고, 또 청렴결백한 인물로 유명하다고!
  • 대성: 부정부패를 바로잡은 이약동은 오로지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 한 행동이야!
  • 승리: 그래서 백성들은 깊이 감동하여 이약동에게 송덕비를 세워 보답하려 했어~ 근데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 대체 이유가 뭘까?
  • 탑: 이약동은 원래 돈이 될만한 거창한 선물은 싫어해. 백성들의 판단미 스였던 거지 뭐~ (x)
  • 영배: 아냐 이약동은 백성들의 갸륵한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또 청렴결백한 인물로 유명하다고!
  • 지용: 맞아. 그래서 백성들이 다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직접 만들어 선물한 말채찍은 고맙게 받고 소중히 다뤘어! (x)
  • 공직자로서 사사로운 금품을 멀리하려고 하였다.
  • 관직에서 받은 말채찍을 개인적으로 보관하였다. (x)
  • 성종 때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 견금여토를 가훈으로 하였다.
  • 이약동은 백성들을 아끼기로 유명했고, 제주도의 한라산신제단은 이를 잘 보여주는 유산으로 남아있다.
  • 이약동과 이시백의 모습에서 금품 및 향응을 대하는 공직자의 바람직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 오늘날 정년퇴임과 같은 ‘치사’를 하기까지 흐트러짐 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 제주목사로 부임하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그를 많은 이들이 존경했다.
  •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말채찍은 집안의 가보로 고 이 모셔두었다.(x)
  • 제주목사 임기를 마치고 백성들이 선물한 금갑옷은 바다로 던져버렸다.

 

 

 

 

 

정약용

  • 과학 기술을 실생활에 응용해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자 했다.
  • 유배 생활 중에도 사소한 부탁 하나 청하기를 거절한 정약용의 태도는 다른 공무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해쳐서는 안 될 공무원들의 귀감이 된다.
  • 정팔:자고로 공무원이라면 정약용처럼 오랜 기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인사청탁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해!
  • 동룡: 맞아, 또 정약용처럼 오랜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검소하고 신중한 언행으로 자기 관리를 해야 하지! (x)
  • 택이: 난 두 사람의 태도에서 공직자들은 청탁과 이권개입 등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바람직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
  • 선우: 유의의『목민심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 (x)
  • 보라: 나도 유의가 유배생활동안 그런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저술한 『맹자요의』, 『흠흠신서』,『경세유표』를 보고 배운 바가 많아! (x)
  • 정약용은 강직한 성품 탓에 유배지를 전전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 오랜 유배생활로 고통받던 정약용은 아들의 조언에 따라 이기경대감과 강준흠대감에게 용서를 구하게 됐다.(x)
  • 잘못된 관행이 이어지던 무과시험을 바로잡기 위해 사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유배지에서도 학술활동에 매진해『맹자요의』, 『흠흠신서』, 『경세유표』등을 저술했다.
  • 정약용은 청렴한 태도로 백성들을 널리 살펴 정조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았다.
  • 16년의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인사청탁에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 올곧은 성품을 주변과의 잦은 마찰을 불러왔고, 주변의 공격을 받곤 했다.
  • 유배지에서도 학술활동에 매진해 맹자요의,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을 저술했다.
  • 배다리설계, 거중기설계 등 과학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백성들을 위한 의료기기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x)
  • 노론의 세력 탓에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던 무과시험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은 정약용의 일화는, 인사 문제를 다루는 공직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척도가 되고 있다.
  • 정약용은 홍주의 목사로 있으면서 고관대작이 사사로이 보낸 편지는 한 번도 뜯지 않았다.

 

 

최부와 송흠

  • 송흠은 삼마태수라는 별호를 얻으며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 송흠은 최부에게 사행길에 말을 탄 것을 지적한 것은 공용물의 사적사용에 해당한다.
  • 최부는 송흠이 역마를 타고 서울에서 집까지 내려온 것도 용도 외 사용으로 보았다.
  • 최부는 친 아우 같은 송흠이 사행심에 빠져 공직자의 정신에 어긋나게 될까 염려되어 그를 차단하였다.
  • 최부와 송흠은 삼마태수로 불릴 정도로 청렴한 삶을 살았으며, 청백리의 표본이다.(x)
  • 최부와 송흠의 일화에서 공무원이 지녀야 할 예산과 공용물의 올바른 사용의 청렴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최부는 역마를 타고 자신을 찾아온 송흠을 꾸짖으며 공용물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였다.
  • 최부와 송흠은 고향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이다.
  • 송흠은 최부를 만나기 위해 나라에서 받은 역마를 사용했다가 최부에게 질책을 받았다.
  • 송흠이 최부를 만나기 위해 최부의 집까지 역마를 사용한 것은 예산과 공용물을 사용할 공직자의 모범적인 사례이다.(x)
  • 송흠은 인종 때 청백리에 녹선 된다.
  • 최부는 1454년 출신으로, 연산군 때 사람이다.
  • 조선 중기 상령을 대표했던 유학자 김종직의 학통을 추종하는 문인이다.
  • 최부는 1504년 갑자사회 때 참형을 당하였다.
  • 송흠과는 절친한 사이였지만, 개인적인 사행에 역마를 타고 온 모습을 보곤 실망하여 그 뒤로는 다신 만나지 않았다.(x)

 

이덕형

  • 오성과 한음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x)
  • 임진왜란 당시 움직이려 하지 않던 명군을 파견하도록 설득하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 영의정 자리까지 올라 혼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 사랑하는 첩을 버린 일화에서 개인의 사사로움을 뒤로한 채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공직자의 충절을 엿볼 수 있다.
  • 훗날에 재상이 된 이항복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 이덕형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정주(定州)까지 왕을 호위하였고, 명군의 파견을 성공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 이덕형은 제호탕을 바친 첩의 의도를 의심하여 그녀를 내쳤다.(x)
  • 이덕형은 많은 공적을 이뤘으나, 광해군 즉위 이후 모함당해 관직을 삭탈당했다.
  •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x)
  • 첩의 총명한 모습에 괴로워하던 이덕형은 첩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 첩을 버린 그의 행동에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공직자의 충절이 돋보인다.
  • 그의 일화에서 「공무원 윤리헌장」의 ‘국가에 대한 헌신과 충성’을 생각할 수 있다.

 

 

김시양

  • 어려서부터 총명함으로 두각을 나타낸 김시양은 1605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문원정자로 벼슬길에 올렸다.
  • 전라도도사조선시대각도에 실시하던 시험인양 시에 출제한 시제가 와의 실정을 비유했다 하여 유배지를 가야만 했고, 그곳에서 사직하였다.(x)
  • 괴산 김시양 신도비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가 비문을 썼고, 웅장한 규모와 질 좋은 돌이 사용된 것으로 봤을 때 김시양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다.
  • 어릴 적부터 총명함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청명한 성품을 간직했던 김시양은 1636년 청백리에 이름을 올렸다.
  • 김시양은 160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무원 정자로 벼슬길에 올랐다.
  • 김시양은 귀양을 가기도 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재조명받아 다시 중용되기도 하였다.
  • 김연원이 경복궁 재건축을 담당하던 시절, 조선전체는 온백성이 생활고를 겪는 등 힘든 시기였다.(x)
  • 김시양과 심연원의 태도로부터 특혜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해관계에 얽매지 않는 공무원의 올바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 하하: 공무를 집행할 때에는 사위의 요청에도 치우치지 않았던 김시양의 태도를 보면 얼마나 강직했고, 대단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 수 있어.
  • 홍철: 사위의 간청에도 냉정했던 것을 보아하니 평소 김시양과 사위는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아. (x)
  • 길: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경복궁을 복원한 관리인을 크게 꾸짖은 것은 두 번째 화재로 인해 조정의 위세가 많이 무너졌는데 꾸미는 것에 시간낭비를 했기 때문이야. (x)
  • 형돈: 아냐, 국법 상 오직 내전의 침실에만 비단을 사용하는 것인데, 하물며 관청건물에 비단을 쓴 것은 공직자로서 너무 사치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야.
  •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김시양은 기억력도 뛰어나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한다.
  • 전라도도사 시절 향시에서 출제한 시제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 왕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다. (x)
  • 사돈 지간마저 국무의 절차를 엄중히 밟은 그의 태도에서 공무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일처리를 배울 수 있다.
  • 후금과의 화친을 주장하여 귀양을 가기도 했다.

이순신

  • 이순신은 노량해전 전투에서 도주하던 적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호남지역으로 들어오는 피난민들을 돌보고, 전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둔전을 일구고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 이순신은 직속상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뜰안의 오동나무를 베고, 심부름꾼을 극진히 대접하여 돌려보냈다.(x)
  • 원칙을 엄수하는 강직한 행동으로 이순신은 유배 생활을 하는 등 험난한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 임진왜란 때 수군을 담당했던 이순신은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북상하던 왜군들을 저지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 이순신을 대표하는 또 다른 면모는 원칙을 엄수하는 강직한 행동으로 유베 생활을 하는 등 험난한 관직 생활을 하게 된다.
  • 이순신의 직속상관 성박과의 일화 중 “나라의 재산이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공직자의 강직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백인걸 서유망 유근 황희 박문수 박순 심연원 홍언필 정태화 유의 검색 링크
백인걸 서유망 유근 황희 박문수 박순 심연원 홍언필 정태화 유의 검색 링크

 

곡좌 공무원행동강령 도덕성 권위 통영시 청백리 청렴 견인불발 기타 검색 링크
곡좌 공무원행동강령 도덕성 권위 통영시 청백리 청렴 견인불발 기타 검색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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